마흔여덟에 온센이란 걸 처음 받아봤습니다

pmyocorsviasv 2026-07-27 13:17 조회 5 댓글 0

회사 그만두고 나서 처음 혼자 나온 여행이었습니다 아들놈은 군대에 있고 집사람은 친구들이랑 제주도를 갔길래 나도 어디 좀 가보자 해서 표를 끊었는데 하필 여기였습니다 왜 하필이냐고 물으면 그냥 그날 제일 싼 표였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착한 날 오후에 숙소 근처를 좀 걸어다녔는데 이건 걷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였습니다 두시 햇볕이 정수리에 그대로 꽂히는데 모자를 안 챙긴 제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편의점에서 물 한통 사서 목에 대고 다녔습니다 옆에서 현지 아저씨들은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걸 보고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구나 했습니다

저녁쯤 숙소 직원한테 몸 좀 풀 만한 데 없냐고 물었더니 두바이라는 데를 알려주더군요 이름만 듣고 저는 중동 음식점인가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진짭니다 사십 넘어서 이런 데를 처음 알아보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가서 보니 등급이 일곱 개나 나뉘어 있습니다 제일 아래 온센이 백팔십만동부터 시작하는데 위로 올라가면 사백만동 칠백만동짜리도 있고 그 위도 있더군요 관리사가 두명 네명 붙는 것도 있고 이름부터 왕이 어쩌고 하는 것도 있는데 저 같은 초보가 첫판부터 맨 위를 지를 이유는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백분짜리 제일 아래 걸로 골랐습니다 카운터에서도 굳이 위로 올리라는 소리를 안 하길래 그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통 한번쯤은 찔러보는데 여기는 그냥 알겠다고 하고 끝이었습니다

습식이랑 건식 사우나를 번갈아 들어갔다 나오는 구성인데 나이 먹으니 이게 왜 좋은지 알겠습니다 젊을 때는 뜨거운 데 앉아있는 게 고문이었는데 지금은 십분만 앉아있어도 어깨가 저절로 내려앉습니다 온천욕까지 하고 나니 몸이 반쯤 물러진 상태가 됐습니다

관리해주신 분은 말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베트남말을 못하고 그분도 한국말을 모르니 손짓으로 아프냐 안 아프냐만 확인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침묵이 편했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쓸데없이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구나 싶더군요

백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잠깐 졸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눈 떠보니 마무리 단계였고 어깨 쪽이 유난히 시원했습니다 평생 책상에 앉아서 목을 앞으로 빼고 산 사람 특유의 뭉침이 있는데 그게 좀 내려간 느낌이었습니다 나올 때 티켓값에 팁까지 다 포함이라 따로 더 낼 게 없다고 해서 그것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돈 계산하다가 기분 상하는 게 제일 싫은 나이라서요

숙소로 걸어오는데 밤바람이 낮이랑 딴판으로 선선했습니다 나이 오십 다 돼서 혼자 여행 온 게 처량한가 싶었는데 그날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에 오면 온센 한 단계 위로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모자도 꼭 챙기고 물도 미리 사두겠습니다 이 나이에 뭘 배우겠나 싶었는데 여행은 매번 뭘 가르치긴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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